여러분은 인공와우나 보청기를 착용한 청각장애인을 마주한 적이 있으신가요? 경험이 있다면, 귀에 착용한 인공와우와 보청기를 처음 봤을 때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아직까지 이런 기기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에 처음에는 요즘 많이 쓰는 블루투스 이어폰처럼 보기도 하고,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도 모르게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시선은 청각장애인 당사자에게 큰 부담이자 스스로 자신의 장애를 숨기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보청기가 필요한 난청인의 경우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착용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고 기기 색깔을 선택할 때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상을 선호하기도 하죠.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우리는 안경을 쓴 사람을 보고 신기하다거나 남들과 다르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인공와우와 보청기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사랑의달팽이에서는 이런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해 다양한 인식개선 활동도 펼쳐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진행했던 🎥'인공와우의 스타일리쉬한 대변신, 인공와우 화보촬영'도 그런 활동 중 하나였어요. 이번 이어레터에서는 이러한 인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으니 관심을 갖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모이면 큰 힘이 됩니다. 앞으로도 사랑의달팽이의 활동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7월 두 번째 '이어레터'를 전해드립니다.
지난 6월 22일, 올해로 2,500건의 인공와우 수술 지원 사례를 기념하여 가수 이적, 배다해 등이 참석한 특별 행사가 진행되었는데요. 이날 공연에서 특히 많은 관람객의 눈시울을 젖어들게 한 수기낭독 무대는 그 내용부터 마음을 울리는 삽화와 천천히 편지를 읽어주던 유인나 배우의 목소리까지. 무엇하나 조화롭지 않은 게 없었답니다.
그날의 감동을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생생히 전해드리고 싶어 작년 제2회 사랑의달팽이 수기공모전 대상작 ‘소리의 울림’을 이곳에 편지로 옮겨적습니다. 부디 아들에게 보내는 청각장애인 엄마의 편지가 달럽 여러분의 마음 속에 오래 간직되길 빕니다.
To. 나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 혹시, 그때 그 바다를 기억하니?
파란빛 하늘과 바다 물결이 유난히 선명했던,
네가 네 살 때 만났던 겨울바다 말이야.
사실 그때 엄마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잘 들을 수가 없었어.
눈으로만 짐작할 뿐이었지...
어느새 이만큼이나 성장한 아들에게
오늘은 엄마 이야기를 해볼까 해.
엄마는 20대부터 서서히 난청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했어. 세월이 흘러 아예 들리지 않는 상황이 올 때까지 말이야. 스물다섯, 한창 나이에 왼쪽에 이어 나머지 청력까지 소실되고 있다는 사실에 엄마는 깊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단다...
지독한 이명과 동시에 들리지 않는 괴로움은 엄마의 인생을 저 깊은 어둠의 나락으로 서서히 끌고 가는 듯 했어. 사람들과 대화를 피하고 아주 특별한 일 외에는 외출도 하지 않았단다. 보청기를 착용하면서 버텨야 하는 일상은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참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어떻게든 견뎌내야 했어.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니 우울증도 점차 호전되었고, 힘들어 포기하고만 싶던 일상들도 그럭저럭 부딪치며 해결해 나아갔단다. 그리고 회사도 다니기 시작했지.
일상에서 꼭 필요한 언어만 들으며 살아가는 게 익숙해질 즈음, 아빠를 만났어. 사실 엄마의 청력 상태로는 ‘결혼’이 당연한 선택이라 할 수가 없었어... 청각장애를 가진 여자라면 다들 엄마 같은 마음일 거야. 그 누구도 자신의 배우자가 장애를 지녔다는 사실에 마냥 긍정적일 수는 없을 테니까...
고맙게도 허스키한 아빠의 목소리가 내 귀에는 부드럽게만 들려서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그렇게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 처음에는 꽤 순조로웠어. 가족들도 청각장애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이 없었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거든.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계획에 없었던 아이, 네가 우리 곁으로 갑자기 찾아오게 된 거야.
“청각장애인인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엄마는 말이야 이런 고민을 수도 없이 했어.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태교를 받아들여야 했고 경제적인 부분도 큰 문제였지만 엄마 아빠는 그때그때 닥쳐올 일들을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자고 다짐했어. 그렇게 걱정 반, 설렘 반의 10개월이 지나고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온 너를, 드디어 만났지! 그렇게 엄마는 “엄마”라는 직업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
내 품에 안겨진 작은 생명을 보면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덜컥 겁부터 났단다.
모든 게 서툰 독박육아...
하루는 종일 너를 돌보느라 너무 피곤해서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었어. 깨어나 보니 이제 15일 된 신생아였던 네 얼굴이 눈물범벅이었어. 배고파서 깨어난 네가 한 시간 넘게 울 동안, 엄마는 내내 잠만 자고 있었던 거야. 그때, 엄마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바로 아기 침대를 치우고 매일 밤, 네 엉덩이 밑에 손을 넣고는 꼭 붙어 잤어. 네가 깨서 움직이면 소리 대신 촉감으로 알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말이야.
아들아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결과도 달라진단다. 엄마는 너를 키우면서 그걸 배웠어. 청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다양한 방법들을 접목해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거든.
주방 일을 하면서도 수시로 너를 돌아보고, 너의 패턴에 맞춰 밤낮 함께 깨고 눕고를 반복하는 일상이었지. 커가면서 ‘엄마 껌딱지’가 된 너는 나를 무척 따랐어. 사실 너무 힘들어 어린이집이라도 보내고 싶었는데, 너는 엄마 껌딱지답게 유치원 가기 전까지 나하고만 같이 놀길 원했어.
아직 말을 잘 못하는 너, 소리를 잘 못 듣는 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지. 청각장애인인 엄마는 못 듣는 대신 내 온몸의 감각과 예감, 느낌을 동원해서 너와 소통해야 했거든.
그래서인지 너는 또래 아이들이 달고 산다는 열감기조차 몇 번 걸리지 않을 만큼 건강하게 자라줬어. 그런 반면, 엄마는 늘 모자란 잠에 육아 스트레스까지 중첩되어 청력이 점점 더 안 좋아졌어. 전화통화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너도 내가 잘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방에서 낮잠을 자다 깬 네가 한참을 울어도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도 엄마는 주방 일만 하고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