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과 대화할 때 중요한 에티켓 몇 가지가 있습니다. 얼굴을 마주보고 천천히 말하기, 되도록이면 조용한 장소에서 말하기 그리고 말할 때 입 모양을 보여주면서 입을 가리지 않고 대화하기 등이 있는데요. 인공와우나 보청기를 착용한 청각장애인과 대화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런 기기를 착용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인공와우나 보청기는 주로 정면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더 잘 받아들이고, 소음이 많은 곳에서는 소리를 선명하게 듣기 어렵습니다. 듣는 정도와 방식이 다르기도 해서 상황에 따라 소통의 어려움은 계속해서 존재하죠.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각장애인을 만났을 때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더 배려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이번 이어레터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청각장애인이 어떻게 대화를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청각장애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소통의 문화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일본에 갓 도착한 1학년 때는 인공와우 적응기였던 탓에 듣는 것이 능숙하지 않았다. 인공와우 수술로 달팽이관에 기다란 기계를 인위적으로 삽입한 만큼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인공와우 외부장치를 끼는 것이 빼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편하지만, 그때는 외부장치를 끄고 다니는 것이 편했을 때였다. 그리고 인공와우 외부장치를 켤 때마다 평범하게 들리는 것보다 약간 더 크게 들리도록 볼륨을 설정해놓았다.
그렇다 보니 놓치는 소리가 적어지고 소리를 더 잘 듣는 대신, 다양한 잡음에도 무방비로 노출됐기 때문에 자연스레 스트레스도 많아졌다.
이제는 켜고 다니는 게 편하지만, 대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인공와우 외부장치를 착용한 쪽의 귀가 아프다고 해야 할지, 달팽이관이 아프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날이 가끔 있다. 그런 날에는 그냥 버티면서 그러려니 한다.
나는 사람마다 휴식의 기본값이 있다고 믿는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 과부하가 걸리면 보통 껐다 켠다. 그러면 컴퓨터는 모든 연산을 멈추고, 다시 재빠르게 쓸 수 있는 기본값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내가 제일 편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우선 인공와우 외부장치를 뺀다. 이 말은 곧 자연스레 내 주위 사람들도 안 들리는 상태의 나와 마주친다는 뜻이다. 그런 순간에 집주인 할머니와 몇 번인가 마주쳤다.
잠깐 당황하다가 “제가 지금 보청기(인공와우 외부장치)를 빼고 있습니다” 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사실 사람이라는 게 그런 말을 들으면 “아, 보청기(인공와우 외부장치)를 빼고 있어?” 라고 습관처럼 말하게 되는 것 같다.
할머니가 다시 말을 거는 모습을 보고, ‘한국어로도 가까스로 되는 구화가 일본어로도 될까?’ 하며 나는 할머니의 입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말하는 내용이 잘 읽혔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머릿속에 술술 잘 들어와 내심 놀랐다.
이렇게 주위 사람들, 주로 주인집 할머니와 마주치면서 새로 깨달은 사실은 구화는 일본어도 가능, 아니 오히려 일본어가 더 하기 쉽다는 것이었다.
다른 청각장애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구화를 하면 입 모양을 통해 자음과 모음 몇 개는 유추하기가 쉬운데 유독 어려운 것이 한국어의 받침이다. 하지만 일본어의 경우 받침이 따로 없다. 있어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받침을 안 만든다.
아침에 마주치면서 하는 첫인사인, ‘오하요 고자이마스’ 의 경우, 모음만으로 본다면 입 모양이 ‘오아오 오아이아으’ 이렇게 읽힌다. 이걸 읽을 때 시간이 아침이고 첫 만남에 나온 말이면, 자연스레 ‘오하요 고자이마스’ 로 유추가 가능하다.
반대로 한국어 ‘안녕’의 경우, 모음만을 읽는다면 ‘아어’이렇게 입 모양이 읽힌다. 이 ‘아’, ‘어’ 두 음절의 입 모양은 파생되는 가짓수가 어마어마하다. ‘어’는 ‘여’일 수도 ‘어’일 수도 있기에 구분하기가 더 어렵다. 영어의 ‘hi’에 한국어 ‘요’를 가볍게 말하는 ‘여’를 섞어서 ‘하이여’라고 말한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