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이날의 어머니를 찾아가 울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눈앞의 건장한 구릿빛 근육질 청년이 보이지 않느냐고. 주변 사람들과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내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카페 운영도 잘하고 글도 쓰며 열심히 잘 살고 있으니, 앞일은 걱정하지 말고 맘 편하게 키우고라고. 보청기 또한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오해받을 만큼 티도 안 날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후 정밀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한 번 더 갔다. 엄마와 함께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는데,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나왔다.
그런데 그 문제가 좀 특수하다고 했다. 귀가 나빠지기는 했는데, 완전히 나빠진 것은 아니고 발음이 좀 끊겨서 들릴 거라고 진단했다. 그중에서도 한국어의 받침음이 좀 다르게 들리는 희귀난청이라는 것이었다. ‘문’과 ‘물’처럼 받침 음의 차이가 있는 단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식이다.
아하, 그래서 내가 ‘문’ 닫고 오라는 말을 ‘물’ 갖고 오라는 말로 들었구나.
매년 청력검사를 받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일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았다. 매년 검사를 받을 때마다 귀가 나빠지고 있다는 체감은 없었는데, 의사랑 따로 이야기를 나눈 후 진료실에서 나오는 어머니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나에게는 청각장애가 있다, 뭔가 남들보다 부족하다’라고 인지하기 시작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들리지 않기 시작한 이후 짜증이 늘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나한테 딱히 별말을 안 했는데도, 혹은 실수로 팔을 살짝 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엄마에게 “친구가 괴롭혀”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잘 안 들린다는 사실은 예민한 성향인 나에게 피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피해의식의 촉발제가 되었다. 명확하지 않게 웅얼웅얼하는 소리는 병약하고 내성적이었던 그 시절의 나에게는 오해하기 딱 좋을 정도로 모호하게만 들렸다.
꼭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도 사람들과 썩 잘 어울리질 못했다. 가족 모임이나 어떤 특정 모임에 가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두꺼운 책을 들고 한쪽 구석에 처박혀 혼자 읽기만 했다고 한다. 사실 누군가가 옆에서 조금 더 신경 써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내 옆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게 무슨 내용인지, 무슨 주제로 웃고 있는지 좀 더 제대로 전해줬더라면, 그런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았을 텐데.
지금에 와서는 그런 아쉬운 생각도 어쩔 수 없이 든다.
하루는 우리 가족과 어머니 친구네 가족이 함께 서점에 갔는데, 나이에 비해 어려워 보이는 책을 내가 읽고 있더란다. 그걸 보고 어머니가 “승호야, 엄마가 이 책 내용에 대해 알려줄까?” 하며 책 내용을 조목조목 알려주었단다. 그런데 내가 어머니에게 “엄마, 그거 아니야, 잘못 읽었어. 그건 그런 내용이 아니라, 이런 내용이야” 라고 내용을 정정해주었다고 한다.
그걸 보고 어머니와 친구분이 “승호 천재 아니야?” 이러면서 호들갑을 떨었다고 한다. 천재였을 리는 없고, 지금 생각해보면 결핍에서 나온 반작용이었던 것 같다. 잘 들리지 않으니 책처럼 시각적인 것에 유별나게 몰입했고, 그런 까닭에 또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책 내용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